해질녘 낚시는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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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을 연다.
지렁이가 꿈틀꿈틀 거린다.
실한놈들로다가 집어서는 그대로 바늘에 꿴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다.
넘실대는 해를 응시하다가 잔잔한 수면위의 정적을 깨트린다.
풍덩
미끼는 이미 던져졌다.
남은건 고기가 미끼를 무는 것을 기다리는 것 밖에 없다.
옛날 부터 나는 낚시가 좋았다.
내가 무언가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
내 양손으로 생명을 저울질 한다는 것.
기다림의 미학이 있다는 것.
이외에도 낚시에 재미를 나열하면 한 궤짝의 소주와 열번의 밤이 필요하다.
찌가 움직인다.
사람소리가 들린 것도 마침 그때였다.
"어이구 안녕하십니까?"
걸걸한 목소리 하며 넉살좋은 말투로 미루어 짐작해볼때 이미 쉰은 가뿐히 넘긴듯한 이다.
"예예 안녕하세요."
인적이 끊긴듯한 곳이지만
낚시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있을 법한 곳이다.
"이거이거 곤란한 일이 생겨서... 제가 그만 깜빡하고 버너를 놓고 왔지 뭡니까? 염치가 없다는 건 알지만 혹 버너좀 빌릴 수 있는지요?"
손의 떨림이 멈췄다.
이런, 고기가 도망간 모양이다.
"버너는 저도 없는지라... 아 토치라면 있습니다만?"
"뭐든 상관없습니다. 이놈들을 익힐 수만 있다면요."
그는 손에 든 고기가 가득한 양동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매운탕 한숟갈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로서는 전혀 물릴 이유가 없었기에
조촐한 술상이 열렸다.
술잔이 오거니 가거니 기분이 좋아진다.
입이 근질근질 해진다.
나 말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이사람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싶어진다.
참는다.
아아, 이래서 술이 좋다니깐.
"나는 말이지 쌩판 남에게야 말로 솔직할 수 있다고 보네.
생각해보게나.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솔직해지면 필시 악영향이 따라온다네.
허나 낯선 타인- 그전 까지 만난 적이 없고 그 후에도 없을 사람-이라면 솔직해져도 탈이 없다는 거지.
그렇기에 우리는 비로소 타인에게만큼은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이야."
"맞는 말입니다."
"자, 그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 이야기를 들어볼텐가?"
"저야 영광이죠."
영광은 개뿔.
술이 어느정도 들어가니 내 주사가 나왔다.
그건 바로 상대방에게 맞장구를 쳐주는 것.
술을 처음 접했을 적에 취하지 않은 척을 하려 열심히 연기하다가 생긴 주사다.
보나마나 꼰대의 인생 이야기겠지.
소싯적의 영광들
계집년들 좀 따먹은 이야기
젊었을 적 몰았던 차라던지.
"크흠, 내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여우같은 마누라에 토끼같은 딸래미가 있다네.
근데 어느날 부턴가 그 둘의 사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어.
내가 퇴근하고 집에만 들어오면
뭐랄까... 나를 독차지 하려고 한달까나?
아, 이건 내 주책 같은 게 아닐세.
둘 다 쉬지않고 기싸움을 펼친다네.
아빠는 사과가 좋죠? 하면서 사과를 깎아서 들이대는 딸과
아니, 그이는 배를 더 좋아해. 하면서 배가 담긴 접시를 들이대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처음에는 좋았지.
관심을 받아서 싫어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허나 그것도 처음에만 그랬을 뿐.
날이 가면 갈수록 사람이 미칠 노릇이지.
그래서 어느 날 아내를 붙잡고 물어봤지.
"이봐, 당신하고 정연이 도대체 요즘 왜 그러는 거야?"
아, 정연이는 내 딸 되는 아이라네.
그랬더니 아내는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갑자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정연이는... 죽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그걸 모르고 있어요."
라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를 말했지.
"그 아이 방문이 요즘 항상 잠겨져 있는 것 당신도 알테죠? 그 아이... 사실 목 주위에 파우더와 컨실러를 바르고 있어요. 흉터를 지우려고.
네, 정연이는 목을 매달고 죽었어요.
그래서 목 주위에 밧줄 자국이 시퍼렇게 남은 건데 그아이는 왜 요즘 트러블이 자꾸 나냐며 성화에요...
이 집안에서 그애와 함께 있으면 너무 무서워요...
내 딸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죽었는 걸요 분명."
나는 내 아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지각이 안되었다네.
하지만 그 순간 딸아이가 보고 싶어졌지.
아직도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등지고 딸아이의 방으로 달려갔다네.
철컥
역시 잠겨있었지.
"정연아, 아빠다 문좀 열어 주겠니?"
그렇게 몇분이 지났을까
방문이 열리고 정연이가 나왔어.
분명 목주위가 허옇고 뿌옇더군.
손을 뻗어 그 분가루들을 지워내고 그 안에 자리잡고 있을 무언가의 실체를 보고 싶었지.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어
아빠니까.
그대신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네.
"엄마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니?"
그말을 꺼내자마자 안색이 시퍼렇게 변하더니 내 손목을 잡고 방으로 끌고 가더군.
그리고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한동안 말이 없었어.
"정연아?"
"아빠.... 흑 흑 엄마가... 아빠도 이제 눈치 채신거죠?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흑"
그렇게 대성통곡을 하는 정연이를 보고있자니 나도 한바탕 내 가슴 속 언저리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고 싶었지.
그렇게 눈물을 꾹 참고 있는데 정연이가 말을 이었어.
"엄마 배를 보면요... 군데군데에 칼자국이 있어요.
그 칼자국은요... 얼마전에 집에 침입한 괴한이 엄마를 살해하면서 생긴 자국이에요오...
아빠 지금까지 말안해서 죄송해요... 그치만... 그치만 우린 가족이니까요 흑 흑"
어찌나 슬프던지...
내 딸과 아내는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되어서도 자신들이 죽었다는 걸 알지 못하고 있었어.
둘다 죽었어.
그래 둘다.
그리고는 미쳤지.
자신들이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사람인줄 안다니까?
그녀들이 보이는 나또한 미쳤지.
하하하 그래 우리 가족은 미친가족이야.
근데 우리가 이렇게 미치게 된 원인이 뭘까?
내가 그날 회식이 있어서?
몸도 못가눌 정도로 만취해서 길바닥에서 잠이 들어서?
신고가 들어왔지만 아무말이 없어서 그런지 경찰이 출동하지 않아서?
아니, 아니야.
그 원인은 말이야. 니가 내 딸 정연이를 강간하고
그애가 보는 앞에서 내 아내를 죽여서야.
그일이 있고 정연이는 목을 매달아 자살했어.
너는 그 심정을 알아? 자기 피붙이의 주검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손으로 내리는 그 심정을?
오대식.
야이 개씨발놈아.
증거가 없었대 경찰이.
증거?
내 딸이 피와 눈물로 쓴 니 이름 석자가 그 증건데 말야.
너는 내가 쉽게 안죽여."
"그럼요 그럼요 맞는 말입니다 크하하하"
술에 취하고 기분도 좋고~
어?
출처 - 웃대 공포 게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