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료결제 하시겠습니까? >
컨텐츠 정보
- 1,318 조회
- 0 추천
- 0 비추천
- 목록
본문

< 유료결제 하시겠습니까? >
“진짜 허허벌판인 곳이네.”
언제나 키가 높은 빌딩과 사람들로 가득 차있던 도시와 달리 이곳은 가로등하나 제대로 없는 곳.
프리랜서로 엑스트라 배우를 하는 나는 시골에서 촬영되고 있는 한 독립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급히 차를 끌고 이런 곳에 내려왔다.
“아무리 긴급 인원 충당이라지만 너무 구석진 곳이잖아.. 젠장, 출연료보다 길 헤매는데 쓰인 기름값이 더 나가겠네.”
길을 잃은 나는 내일 해가 뜨면 목적지인 야외 출연장을 찾기로 하고 우선 묵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냥 길 가다가 쉬고 싶으면 아무 피씨방이나 찜질방으로 직행하면 되는 수도와 달리, 숙박 시설을 예약할 틈도 없이 갑자기 이런 시골로 오게 된 내가 들어갈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이러다가 그냥 차 안에서 자야 되는 거 아닌가?”
낡은 차량을 끌고 산골짜기를 붕붕 돌아보던 내가 그렇게 중얼 거리는 순간 나는 희미하게 반짝이는 붉은 간판 글씨를 보았다.
< 무인모텔 >
새까만 나무들이 가득찬 산길 한 가운데에서 무심한 저 네 글자짜리 붉은 글씨를 본다면 섬뜩한 기분이 드는 게 보통이겟지만 지금의 내겐 너무나도 반가운 색깔이었다.
헐레벌떡 엑셀을 밟은 후 이미 몇 대의 봉고차가 들어서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었다.
접수처 안으로 들어가보니 과연 무인모텔답게 종업원은 없었다.
다만 다 낡아빠진 자판기 같은게 있었는데, 이미 모든 방은 나가있고 단 하나의 방만 남아있었다.
“이런 시골 구석탱이 모텔에 방이 하나 빼고 다 나갔다고?”
아아, 무인이라서 그런가? 생각해보니 이런 종업원 하나 없는 모텔이니 대실이 끝난 후 청소가 없어 새 방이 늦게 생길 것 같긴 하다.
게다가 얼굴을 보여선 안 되는 사람들이 불륜을 저지르려고 이런 시골 무인 모텔을 자주 사용한다하니..
...쓸데없는 생각 그만 두고 내일 일찍 일어나가 위해 빨리 씻고 자자.
나는 낡은 자판기가 뱉어낸 404호 열쇠를 집어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요즘 시대에 카드키가 아닌 진짜 열쇠라니.
삐걱대는 문고리에 열쇠를 박아 흔든 후 억지로 비틀어내 여니 허름한 방 구조가 나를 맞이했다.
딱 봐도 쉰내날 것 같은 침대 하나, 뒤통수가 큰 낡은 티비 하나, 그리고 변기와 같이 붙어있는 욕실.
“하.. X나 허름하네.”
내 동기는 어느새 잘 나가는 주연 배우가 되어서 삐까뻔쩍한 호텔에서 숙식하던데, X발, 왜 걔가 선택한 영화는 천만영화가 되고 내가 고른 영화는 희대의 망작이 된건데.
영화 몇 개 잘못 선택해서 출연했을 뿐인데 어느새 독립 영화에나 긴급 충당되는 싸구려 조연 배우로 떨어져 버렸네.
무엇보다 제일 빡치는 건 열쇠 꼬다리를 문 옆 센서에 꽂자마자 켜지는 티비에 포르노 영화가 튀어나왔단 점이다.
내가 리모콘을 들고 티비를 끄려던 순간이었다.
“..잠시만, 좀 이쁜데?”
티비 속 여배우에 눈길을 뺏긴 나는 짐을 내려놓고 와이셔츠를 벗으며 무심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낡은 티비 화면 속에 검은 긴 생머리의 여인이 치과 의자 같은 것에 묶여 누워 있었다.
여자만을 비추는 어두운 조명과 카메라 각도.
그리고 헐벗은 채 구속되어 있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 취향인 sm 본디지물인 것 같다.
“...이왕 켜져있는 거.. 크흠, 조금만 더 볼까.”
나는 냉장고에 들어있던 캔 콜라를 툭 따고 침대에 누워 리모콘으로 음량을 높였다.
[ 으읍.. ]
재갈이 물린 여인은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몸을 파르르 떨었다.
대사 한 마디 없는데 ‘날 놔주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굉장히 호소력있는 시선이다.
“연기 완전 잘하네..?”
홀짝, 나는 콜라를 한 모금 마시며 포르노 배우답지 않은 그녀의 연기력에 감탄했다.
나는 그녀의 진정성 있는 표정 연기를 연구하고자 흥미있게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물론 다 큰 남성이니까 다른 의미로도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한창을 여배우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던 카메라는 갑자기 한 곳에 고정되더니,
슬그머니 털이 무성한 양 팔만이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그녀의 가슴을 아슬하게 가리는 천조각을 천천히 걷어내기 시작했다.
[ 으..으으으읍!!! ]
그녀가 막힌 입으로 울부짖으며 반항하자 천조각이 남자의 손에서 떨어져 땅에 툭 떨어졌다.
그렇게 아름다운 곡선이 드러나려는 찰나, 갑자기 카메라가 어두운 벽을 비춘다.
이윽고 화면에 가죽 채찍과 양초가 들린 팔이 나오더니 아래 문구가 떠올랐다.
< 이 다음부터는 유료입니다. 유료결제 하시겠습니까? >
“젠장!!!”
중학생 시절 산골로 수학여행 가서 반 친구들끼리 몰래 성인 방송 미리보기를 하다가 딱 막힌 기분이다.
하지만 그 때와 달리 나는 구매력이 있는 성인 남성이다 이거야!!
여배우의 연기력과 청순한 외모에 홀딱 반해 몰입하고 있던 나는 서둘러서 리모콘을 조작하여 유료결제를 눌렀다.
내가 욕망을 참지 못하고 결제하자 카메라에 다시 여배우가 드러났다.
그녀가 아름다운 나신을 드러내며 숨을 몰아쉬자, 그녀를 보는 나도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여배우가 아주 살짝의 괴롭힘을 받으면서 남자 배우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영화는 내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 찰싹!!! ]
[ ...!!! ]
남자 배우의 손으로 휘둘러진 채찍에 핑크빛으로 부풀어오를 줄 알았던 여인의 뱃가죽이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어어?”
카메라에 피가 튀자 엄지손가락이 튀어나오더니 무심하게 스윽 닦아내었다.
화면에 희미하게 남은 붉은 핏자국 너머로 여배우가 재갈 물린 입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날뛴다.
그리고 남자의 팔은 찢어진 뱃가죽 위에 양초를 가져다대더니, 상처 부분을 지지기 시작했다.
화면 너머로 하얀 피부가 불길에 오그라드는 장면이 보이자 여기까지 살 굽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뭐야, 이 영화 꽤 리얼한데?”
좀 충격적이긴 했지만 원래부터 나는 좀 하드한 영상을 좋아했다. 영화도 슬래셔물을 좋아하는 편이고, 그런 영화에 주연 배우가 되는 것이 내 꿈이었다.
이 영화 제목이 뭘까 나중에 찾아봐야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여배우의 열연에 빠지기 시작했다.
남자 배우는 정말 노련한 손놀림으로 여자 주인공을 고문하여 채찍과 양초로 아름다운 백옥의 나신을 시뻘건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한창 달아오르는 순간에 티비 화면은 다시 벽을 비추었다.
그리고 이번엔 펜치를 들더니, 화면 아래에 문구가 나왔다.
< 유료결제 하시겠습니까? >
“..펜치로 뭘 하려나, 손톱이나 이빨을 뽑으려나?”
호기심이 동한 나는 좀 가격이 쎈데..하며 걱정하면서도 거침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화면은 다시 움직였고 이번에도 전개는 내 예상을 빗나갔다.
남자배우는 펜치로 다짜고짜 여배우의 세피아색 눈알을 뽑아내었다.
“오우, 리얼해 리얼해...”
나는 영화의 특수분장 기술이 너무나도 대단하다고 감탄하며 마지막 남은 콜라를 들이켰다.
텅 빈 두 눈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여배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니 내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흐음...이거 엄청 재밌네.”
그렇게 내가 중얼거리던 찰나, 카메라가 세차게 흔들리면서 손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두 눈이 뽑힌 여배우의 입에 묶인 재갈을 슬며시 풀어내었다.
과연 저 여자주인공의 기념비적인 첫 대사는 무엇일까.
내가 침을 삼키며 그녀에게 집중한 순간이었다.
‘탁.’
하고, 방음 처리가 제대로 안 된 건지 옆방에서 불 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화면 속 어두운 방에서도 환하게 불이 켜진다. 여배우가 묶여있던 의자 주변에 익숙한 갈색 벽지가 보인다.
"어?"
바로 내가 묵고 있는 이 방과 똑같은 색이다.
재갈이 풀린 그녀가 피로 붉어진 입술을 벌린다. 동시에, 옆방에서 귀를 찢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사.. 살려주세요!!!”
화면에 새로운 문구가 떠오른다.
< 직접 그녀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 유료 결제 하시겠습니까? >
"....."
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두근두근두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시절, 첫 조연 출연제의를 받았던 때보다 더욱 가슴이 뛴다.
다 마신 빈 콜라캔을 한 손으로 찌그러뜨리고 휴지통에 버린 후 나는 리모콘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결제 버튼을 눌렀다.
"똑똑"
옆 방의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내 대기실에 누군가가 노크했다.
"네, 나가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메이크업은 하나도 안 했지만 이런 영화에는 날 것 그대로의 마스크가 더 어울릴 것이다.
옷매무새만 조금 가다듬고 난 후 나는 배우의 가면을 썼다.
대본 하나 없는 나의 첫 주연 데뷔작이 지금부터 시작된다.
-
이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
그렇다면, 지금 당장 리모콘을 들어.
< 유료 결제 하시겠습니까? >
-
(제 2회 배페단편대회 우수상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