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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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내가 아직 학생이던 시절의 일이다.
당시 나의 친척 중에는 T라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상냥하고 말도 잘 하는 분이셨지만, 신랑이 병으로 죽고 나선 성격이 바뀌고 우울증에 빠지셨다고 한다.
어느 날 밤, 나는 농구 동아리의 연습 때문에 늦게까지 학교에 있었다.
아마 저녁 8시 반쯤 되었을까?
체육관에 T씨가 찾아왔다.
나는 [친척 분이 찾아오셨어요.] 라고 선생님에게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T씨와 대화를 나누셨고, 다시 돌아온 선생님은 심각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아버님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신 모양이다.]
[네? 그럴 리가...]
[친척분께서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오셨다니까 어서 가 보거라.]
T씨와 만난 것은 몇 년 만이었지만, 기억에 확실히 남아 있었기에 본인인 것은 확실했다.
나는 놀라서 T씨의 차에 탑승했다.
차가 출발하고, 밤길을 달리며 나는 T씨에게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세요?]
[병원에.]
[어디 있는 병원인가요?]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있어.]
[상태는 어떠신데요?]
[나도 잘 몰라.]
...어쩐지 딱딱한 대답뿐이었다.
운전은 제대로 하고 있었지만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달까?
계속 차를 타고 가면서 점점 이상한 점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차는 계속해서 교외 쪽으로 나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병원들은 시내에 있는 데다, 시 바깥쪽은 산지여서 다른 도시까지는 한참 걸리는 거리였다.
내가 질문을 해도 매정하고 짧은 대답뿐이고, 옛날 이야기를 꺼내려 해도 [그래...] 라는 대답뿐.
내 옆에서 운전하고 있는 이 사람이 정말 T씨인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 사이 자동차는 다른 시로의 경계까지 도착했다.
어느새 주변에는 가게 하나 보이지 않고, 산속에 민가가 몇 곳 보일 뿐이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에 아직 문을 열고 있는 슈퍼마켓 앞에서 [동아리에 연락할 게 생각나서 잠깐 전화 좀 할게요.] 라고 말하고 억지로 내렸다.
슈퍼마켓 안에서 창문으로 몰래 밖을 내다보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가게로 오고 있는 T씨가 보인다.
몹시 기분 나쁜 예감에 나는 서둘러 반대편으로 달려나갔다.
다행히 도로에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서 그대로 집까지 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어머니에게 택시비를 부탁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편하게 거실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고 계셨다.
[왜 그러냐? 숨을 헐떡이고...]
느긋한 표정으로 물어보시는 아버지.
내가 T씨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아이도 없이 혼자 남겨진 T씨는 정신적으로 생각보다 훨씬 많이 지쳤던 것일까?
아버지는 T씨의 집에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T씨의 친가에 전화를 해서 고모할머니께 사정을 말했더니
T씨는 남편이 죽은 후에 정신과에 입원을 했고, 그 이후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
다음날,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해 T씨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부탁하셨다.
경찰이 T씨의 집에 찾아갔을 땐 지갑을 제외한 귀중품은 모두 집에 있고, 자동차만 사라져 있는 상황이었다.
방에는 수많은 술병과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들이 쌓여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T씨는 아직도 행방불명 상태다.
아마 내가 슈퍼마켓의 창문 너머로 본 것이 마지막이겠지.
너무 오랜 시간 종적을 감췄기에 이젠 이미 법적으로도 사망 처리가 완료되었다.
만약, 그날 내가 계속 그 차를 타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T씨는 나를 데리고 어디에 가려고 했던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