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소원은 물 한 잔이었다
컨텐츠 정보
- 1,015 조회
- 0 추천
- 0 비추천
-
목록
본문
낡은 램프에서 튀어나온 남자가 환각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또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고, 나 또한 피해를 입지 않을 적정 수준의 방법이었다.
자신을 '지니'라고 칭한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분부대로 하겠다고 했다.
곧이어 식탁 위에 적당히 채워진 물 한 잔이 나타났다.
...상쾌한 액채가 목 뒤로 넘어갔다.
그러니까 이게 진짜란 말이지?
두 번째 소원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복권.
마침 한동안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사상 최고치의 당첨금이 적립된 상태였다.
나는 복권 당첨을 빌기 전에 잠시 고민했다.
그동안 많은 소설과 괴담 속 악마들은 소원을 비꼬아서 들어주고는 했다.
소원을 빈 사람들은 늘 좋지 못 한 결말을 맞이하고는 했지.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고민 끝에 나는 두 번째 소원을 말했다.
[내가 사는 복권 번호가 모두 이번 추첨 방송에 나오면 좋겠어.]
지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노라 했다.
그리고 정확히 3주 뒤, 나는 모든 서류에 서명하고 엄청난 거액을 손에 넣었다.
내가 집을 사거나 빚을 갚는 등 돈을 써대는 동안 지니는 조금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하염없이 마지막 소원을 빌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마지막 소원에 대해 꽤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이 났다.
나는 딱히 영원히 살고 싶지도 않고, 부는 지금도 충분하다.
이목을 끌 필요도 없고, 이 상태가 가능한 한 오래 유지되기만을 바랄 뿐.
나는 지니를 불러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여든 살의 생일 때 잠을 자는 동안 평화롭게 숨을 거두고 싶어.]
지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노라 말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 달 뒤, 나는 깨달았다.
나 역시 기존의 어리석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예고 없이 터진 대규모 핵폭발로 생존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 육체는 이제 한없이 약해져 이젠 비축해둔 식량을 꺼내 먹는 것조차 힘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고, 살아야 한다.
...또 한 해가 지나 내 생일이 되었다.
나는 얼마 없는 힘을 쥐어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벽에 작은 한 줄을 그었다.
이제 47년 남았네.
